앤읽기소모임 ⓒ사이랩
청년학습+실천 커뮤니티 사이랩이 3월부터 시작한 소모임의 주제는 ‘빨간머리 앤’ 책읽기다. 청소년 문학 작품이나 만화로 익숙한 빨간머리 앤이 학습과 또는 청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들의 소모임 중에는 ‘걷기 공부’도 있다. 걷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일까? 독특한 실험적 소모임을 통해 공부를 하고, 공부를 통해 청년들의 길을 찾는다는 커뮤니티 ‘사이랩’, 또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민들레’ 탐방을 위해 성북구 보문로 34가길을 찾았다.
주택을 개조한 공간 민들레는 산뜻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실내 한구석은 바닥에 돌을 깔고 나무와 화단이 있는 정원처럼 꾸며놓았고, 거실 가운데 크고 노란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거나 각자 작업을 하고 있다. 공유 부엌과 회의실도 있다. 이곳이 청년 학습+실천 커뮤니티 사이랩의 거점 공간이라고 한다. 사이랩의 이혜민 청년 활동가에게 공간 민들레와 사이랩의 소개를 부탁드렸다.
“대안교육공간 민들레는 대안교육 출판사 민들레에서 파생된 공간이에요. 공교육에서 느낀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풀기 위해 대안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모여서 만든 교육 전문 출판사죠. 민들레 출판에서 펴낸 책과 잡지 등을 읽고 청소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런 탈학교 청소년들의 교육열이 모여 민들레 사랑방을 낳게 된 거죠. 그리고 청소년들이 거기서 모인 시간들이 쌓이면서 공간 민들레는 대안 학교로서 20년간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마포구에 있었다가 2015년 성북구로 공간을 옮기고, 사이랩은 성북구에서 탄생했어요. 원래 사이랩은 청소년들이 성장해 청년이 되면서 길찾기 교육 중 하나로 기획된 커뮤니티인데요, 청소년을 위한 길찾기를 청년들을 위한 길찾기로 확장해 간 거죠. 사이랩에서 만나는 청년들은 자신들의 진로 뿐 아니라 공동체살이 등에 대해 다양한 관심이 있어요. 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하던 지역 활동이나 워크샵, 강의 등이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워크샵 등 다양한 활동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이란?”
“우리나라 청소년 기준법으로는 9세에서 24세까지죠? (웃음) 저희는 일단 만 35세까지 모집을 하고 있어요.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은 공감대와 같은 사람들이 활동을 엮어 나가기 위해서에요. 청년들의 고민은 주로 진로 찾기인 가운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공감대를 맺기 쉽고, 관심분야는 나이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에 제한을 두게 됐어요.”
“사이랩은 학습과 실천의 커뮤니티고, 학습을 통한 길찾기를 추구하는 모임입니다. 진정한 배움은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데 제도권 교육은 배울 때는 배우기만 하잖아요. 거기에서 탈피해 기본적인 모든 교육과정이 배웠으면 행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배움 역시 주체적인 배움을 강조하기에 소모임을 위주로 하죠. 처음에는 강의식 교육도 있었지만 올해는 강의가 없습니다. 고정 멤버들과 연구원들이 소화하는 그룹 미팅이 있어요. 그룹 미팅은 의사소통 연습이자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자리입니다. 회의이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수다의 장이기도 하고 자기의 성장을 체크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장이기도 해요. 이 과정은 진로 찾기에 필수적이죠.”
-“<성장을 위한 말하기>라니 무척 흥미로운데요, 그룹 미팅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나요?”
“이건 민들레에서 해 오던 과정인데요, 청소년들을 위해 1년의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어요. 1년 안에 어떻게 깊은 배움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했죠. 교사(길잡이)들은 과정을 가르쳐 준다기 보다 과정을 엮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과정을 도입한 것인데, 함께 하지 않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그런 대화 자리에서 개인에게 필요한 어떤 문제가 도출되면 필요한 걸 도입하는 식이에요. 사람들끼리 생활하다보면 감정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대화에서 그런 골이 두드러지면 우리 비폭력 대화 워크샵을 해 볼까? 하게 되는 식이죠. 이건 필요를 스스로 찾는 과정인데, 원인을 분석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라서 어른들도 하기 힘든 고급 기술이에요. 하지만 오히려 청소년 때 배우기가 쉬워요. 규칙– 즉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위한 수단,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정하는 거예요.”
청년현실연구 ⓒ사이랩
-“현재 사이랩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2018년 현재 사이랩은 활동가로 이루어진 운영진 8명과 참여하는 연구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모임은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의향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첫째로 나를 찾는 것, 나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지금은 뻘강머리 앤 읽기, 의사소통, 조직문화 워크샵, 근현대사 소모임, 몸 활동에 대한 걷기 공부 소모임 등이 진행 중입니다. 이 소모임은 청년들의 욕구에 따라 개설된 것으로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의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이 소모임을 통해 자신이 직접 꾸려나가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진로에 대한 재탐색을 하는 방법을 익히게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 순서거든요. 이런 단계별 목표의 좋은 점은 각 발전의 단계와 각자의 진로 탐색의 단계를 맞추어 나아갈 수 있다는 거죠. 각자의 상태를 스스로 알아보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는 유기적인 활동이 되는 셈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안다는 게 굉장히 소중한건데요. 그걸 탐색하는 과정이 현재 공교육에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맞아요. 청년 실업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이직률도 엄청나게 높아서 취직을 하면 3개월 만에 그만 두는 비중도 높습니다. 내게 맞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그것을 찾는 방법부터 알아야 하죠. 저희는 그러한 학습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고 생각해요. 또 이렇게 끌어낸 청년층의 변화가 기성 세대들의 변화도 촉구하기를 기대하고 있죠.”
“한국의 청년 정책에서 진로에 대한 감수성은 가장 뒤처진 부분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이러한 교육을 바꾸기 위한 정책 참여 활동도 해요. 시나 구에서 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사이랩의 활동을 통해 지역의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을까요?”
“이런 공간에서 청년들이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 일상의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것 자체로요. 청년들에게는 거점 공간과 후원이 중요해요. 사람들이 사이랩을 좋아하는 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동료 집단에 대한 욕구, 일상적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공간, 친밀함과 안정감 때문인데요. 그만큼 현실에서는 그런 만족을 얻을 장소가 없다는 거죠. 커뮤니티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공간을 나누고 네트워크의 유지가 장기화되도록 성북구의 청소년들과 함께 힘을 쏟고 있는 것이죠. 또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인식의 변화는 성 인지 감수성이나 비폭력 대화와 같은 부분이에요. 저희는 평등한 관계를 위해 나이와 호칭을 제거하고, 제안이나 의견은 공적인 언어로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방법을 익혀요. 이 모든 것들이 거창하게 말하자면 ‘커뮤니티 리더’를 양성하는 과정이죠. 진짜 변화는 조직 문화와 의사소통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청년들을 지역으로 많이 배출하고자 합니다.”
42파티 ⓒ사이랩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할 때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원은 무엇이 있을까요?”
“청년들이 실제로 가지는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겠죠? 청년들의 거점 공간이 중요하고 안정적인 확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실적으로는 홍보의 문제도 커요. 청년들을 위한 정보의 플랫봄은 ‘대학생, 서울, 취업 정보’ 중심으로 맞춰져 있어요. 그것을 제외한 다른 믿을 만한 정보가 유통되는 네트워크 플랫폼이 필요해요.”
이혜민 활동가의 설명을 통해 사이랩이 추구하고 있는 학습과 청년과의 관계– 나를 알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정립하고, 나를 둘러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갖는 것–와 청년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평생 공부가 넘쳐나는 시대, 학교 공부부터 인문학적 소양까지 공부에
대한 많은 말과 열정이 넘쳐나지만 정작 공부를 어떻게,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이랩의 접근법은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랩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연구원을 상시 모집하고 있으며 소모임 참여도 언제든 가능하다.( https://www.facebook.com/betweenlab)
청년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 것. 시니어들은 후원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