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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사

직장 내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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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영
2018년 7월 27일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7월 24일 오후 7시, 해가 져도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는 더위 속에서도 성북구노동권익센터가 마련한 7월의 노동법 강좌 <직장 내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성북구청 4층 아트홀로 모였다. 오늘 연단에는 박윤진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고용평등상담실장이 섰다.

“2018년 올해 상반기에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아직 성희롱에 대해 많이 모릅니다. 더구나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느니, 펜스룰이니, ‘이젠 지겹다’ 등의 말까지 들려오는 실정이지요.”

공인노무사이기도 한 박윤진 실장은 청중들에게 “이 강의에서 무엇을 배워가고 싶으신가요?” 라는 질문으로 길을 열었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직장에서 성폭력 상담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마을 활동을 하면서 마을 안의 위계와 권력 등에 의한 부적절한 말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배경들이 있지만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역시 ‘성희롱 또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로 보였다.

“저는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어 이 분야의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성희롱·성폭력 전문가가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왜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가 중요한지 생각하게 됐지요. 특히 올해 상반기 같은 경우에는 센터에 굉장히 많은 일이 몰렸는데요. 이는 좋은 신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잘못된 줄도 몰랐던 일을 이제는 잘못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는 특히 미투 운동을 비롯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이것은 노동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가부와 사법부 뒤에 숨어 있지 말고 노동권이 앞으로 나와서 이 문제에 맞서야 합니다.”

직장 내에서 일어난 폭력은 나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나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고 고통을 주는 행위이기에 사업장에서 그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규율하고 해결할 책임을 지며, 노동자들을 그런 환경에 노출시키지 않을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이어서 그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사람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과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 편견입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은 편견을 깨는 것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착하고 효심이 깊은’ 나무꾼 입장에서는 선녀와 결혼한 게 큰 행운이었겠지만, 과연 선녀는 나무꾼과 결혼하기를 원했을까요? 입장을 다르게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나의 불편함을 상대방은 인식하지 못해요.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상대방이 불편하겠다’라고 헤아릴 수 있는 감수성, 즉 성인지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것이 부족한데다가 미처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 갈등의 양상까지 겹쳐서 최근의 성희롱은 무척 복잡한 문제가 되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약자에게만 익숙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내가 잠재적 범죄자가 된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을 하세요. 남자들은 왜 그런 말을 들으면 불편할까요? 그 불편함이 바로 남성이 기득권이라는 증거입니다.”

“멋진 옷을 갖춰 입고 온 직장 동료에게 칭찬이라고 ‘와, 오늘 섹시한데.’와 같은 말을 하면 성희롱일까요? 물론 성희롱이 성립되고 성립되지 않는 것은 맥락과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러한 맥락과 경우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어디까지가 성희롱이고 아닌지’, ‘무슨 말을 해도 되고 안 되는지’에만 집중하지요. 그건 마치 성차별은 해도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고, 성희롱은 처벌을 받으니까 안하겠다는 태도와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불쾌할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박윤진 실장은 ‘성희롱의 기준이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괜찮은가?’는 핵심이 아니라고 했다. 이 강연의 주제인 <무례함은 괜찮고 성폭력은 범죄다?>와 상통하는 말이다. 성차별은 현행법으로 범죄는 아니지만 성희롱은 법으로 규정한 범죄행위이다.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성적 함의가 없는 성차별은 해도 괜찮고, 성희롱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일까? 상대방이 무례로 느끼는 모든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사회적 기준에 맞도록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며, ‘몰랐다’는 핑계와 지체 속에 자신을 버려두어 남에게 무례와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황과 맥락을 삭제한 채 답을 달라고 하거나, 성폭력 예방 교육을 통해 ‘무엇은 되고 안 된다’만 학습하기 보다는 실제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해도 되는 행동의 선을 찾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 마음에 와 닿는 강연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성폭력 예방 교육을 불필요하거나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거나 쉬운 해답을 달라는 식으로 행동하는데, 그러한 관성에서 벗어나 진정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은 사실 기득권자들의 빈정거림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무엇이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인지 성장하고 교육받는 과정 속에서 거의 배울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에서 ‘모르는 것’에 대하여 갖는 공포일수도 있을 것이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몰라서, 어디까지가 무례인지 몰라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사람이 되기 싫다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더불어, 박윤진 실장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명쾌한 해법도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호의는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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