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나 높은 건물들 사이의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나지막한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의 정서가 그립다. 골목길 앞에 둘러앉은 이웃들, 그 곁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저녁이면 된장국 냄새가 골목 사이로 퍼지는 그런 곳 말이다. 서울 아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북정마을은 그런 동네였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마을버스 03번을 탔다. 골목길에서 소꿉놀이를 했던 세대이기에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이 설렜다. 마을버스는 한동안 가파른 길을 올랐고, 어느 정도 오르니 그곳이 여성 안심 귀갓길임을 알렸다. 꼭 정류장이 아니어도 하차를 원할 경우 정차를 해 준다고 했다. 반가웠다. 밤길의 골목길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녀봐서 안다.
나는 마을의 거의 꼭대기로 보이는 북정마을 노인정역 앞에서 내렸다. 보이는 것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하늘 아래 낮은 집, 슬레이트 지붕, 전봇대, 문을 닫은 듯 보이는 허름한 북정카페는 오랜 세월을 지내 왔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멀리 한양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성곽도 보였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채로운 색으로 장식한 화장실도 눈에 띄었다. ‘북정 해우소’라는 팻말이 붙여진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고 있음을 전하고 있었다.
성북구는 유독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동네다. 북정마을 역시 <님의 침묵>이란 시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의 자택 ‘심우장’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우장 가는 길’의 안내 표지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쉽게 눈에 들어왔다. 표지판을 따라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니,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그림이 담벼락을 가득 채운 공원과 마주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렸을 때부터다. 군데군데 보이는 비둘기 그림은 이 동네의 상징과 같았으니,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탄생한 동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지를 치듯 뻗어나간 좁은 골목길 사이를 걷다보니 어느새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심우장이 보인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 북향 터를 잡았다고 하니 투철한 저항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심우장은 1933년 한용운이 직접 집을 지어 194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1년간 거주한 집이다. 시를 쓰고 잠을 자고 밥을 짓기 위해 움직였을 부엌을 들여다보니 조국의 독립을 위한 우직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지난 달, 문화재청은 서울시 기념물 제7호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유산의 문화재 지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조선시대 궁중에 바치는 메주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려 이름 붙여졌다는 북정마을도 이제는 한적한 모습이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며 마을버스로 오른 길을 걸어 내려왔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을 팔각정을 지나니 흰 건물의 경로당이 보였다. 해바라기와 오리 그림을 그려 넣은 집과 이제는 문을 닫은 듯 보이는 구멍가게 사이로 반듯하게 새로 지은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북동은 문화 예술인의 동네답게 감각적인 건물이 자주 눈에 띄었다. 쌍다리역에서 조금 걸으면 볼 수 있는 ‘성북구립미술관’과 지난해 개관해 조선시대 의복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선잠박물관’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또한,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성북동 작은 갤러리’도 맞은편에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봐도 좋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서울의 풍경이 존재하는 곳 북정마을. 그곳의 골목길에는 여전히 밥 짓는 소리가 들리고, 기분 좋게 마른 빨래가 삶이 흐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북정마을, 그 의연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변화와 개발은 먼저 있던 것들에 대한 존중을 우선해야 함을 말이다.
[글/그림 성북마을기자단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