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네 번째 주말. 토요일 오후 4시. 늦은 점심을 먹고 느긋한 동네 산책을 나오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초여름에서 막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이라, 걷다 보면 가볍게 땀이 배어날만큼 햇살이 뜨겁다. 덕분에 가로수의 이파리들은 한층 더 무성한 초록으로 물들고 거리는 눈부신 햇살로 쨍하게 빛난다.
이런 날은 얼음을 띄운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차갑게 우린 차를 마시며 마냥 걸어도 좋다. 하지만, 닿는대로 걷는것만큼 즐거운 것이 주변을 돌아보며 소소한 구경을 하는 일이다. 오늘은 마침 성북동에서 나리장터가 열리는 날이라 그곳으로 향했다. 장소는 성북로 55일대. 가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초등학교 방향을 향해 쭉 걷어가면 된다.
가는 길의 벽면에는 성북동의 여러 가지 유서 깊은 문화재를 알리는 그림이 그러져 있다. 누에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이나 전형필 선생의 간송미술관에 대한 그림이다. 그 벽화들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저 멀리 노란 텐트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대로 왔나 보다, 싶어 반가움이 앞선다. 목적지를 앞두니 자연스레 걸음이 더 빨라진다. 서둘러 가까이로 가 보니 텐트 가판대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서둘러 가까이로 가 보니 텐트 가판대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깨끗하게 세탁되어 단정하고 말끔하게 개어진 옷가지들, 축구화나 슬리퍼, 운동화같은 신발, 모자나 인형, 그 외 인기가수의 사진이나 다양한 장난감부터 도서류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알찬 시장이다.
그런데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새 것과 쓰던 것이 함께 섞여 있는 듯 했다. 중고마켓인 셈이다. 언뜻 보아서는 구별할 수 없을만큼 상태가 좋아 미처 몰랐다. 한 때, 딸과 아들의 보물이었을 인형이나 팽이같은 장난감을 구경시켜 주는 한 아이의 부모님이 눈에 들어와 잠시 그쪽을 유심히 보았더니, 편히 구경하세요- 라며 다정하고 따스히 맞아준다.
그리고 그 옆 텐트의 아이는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마음에 들어하는 다른 아이와 흥정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조용히 책을 구경하는 아이도 있고 떠들썩하게 뛰노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리장터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어른들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음식과 음료를 함께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장터의 가장 큰 매력이란 이렇듯 오고가는 교류가 아닐까.
나리장터에는 물건을 판매하는 텐트 부스 외에도 씨앗이나 모종, 포기를 나누어 집에서 기르는 식물을 나눠 키우는 식물 벼룩시장도 함께 열렸다. 뿐만 아니라 식물과 관련된 식물클리닉Q&A가 열려 서로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빛깔 좋은 성북동 살구를 한바구니 가득 팔거나 충남 예산 친환경 마을의 간장같은 식품류도 눈에 띄었다.
한 켠에는 체험부스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장터의 많은 이들에게 더운 날씨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잠시 목이 말라 나무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작년 나리장터와 관련된 얘기다.
나리장터는 작년에도 열렸고 제작년에도 열렸다고 했다. 물론 이듬해인 올해도 열렸다. 2016년 10월에 열린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해를 거듭하며 점차 그 틀을 갖추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주민참여예산사업의 지원으로 시작하였지만, 같은 사업을 중복지원하지 않는 자치구의 방침에 따라 마을계획단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올해에는 <나리장터 울타리 모임>이라는 팀명으로 공모사업을 진행중이다.
요즘같이 인터넷 매체가 발달한 때에, 그저 쓰던 물건만을 팔고자 한다면 이렇게 모이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하지만, 나리장터는 장터라는 계기를 통하여 마을의 아이들이 함께 뛰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놀이터와 배움터를 마련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아이들의 동네친구, 동네언니, 동네형같은 관계형성이나 유대감형성과 더불어 어른들의 네트워크나 커뮤니티의 장도 함께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리장터는 주민공동체와 마을공동체의 장이다.
장터로 시작한 모임은 매년 같은 자리에서 열리며 점차 마을의 공론장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형태로 발전하지 않을까?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누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자연스레 성북로 55길 일대로 향할 그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