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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경통신원

명원민속관 – 한규설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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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북마을
2019년 12월 16일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 진다. 도심 속에서 만난 한옥의 느낌이다. 성북구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국민대 후문에 백년 된 고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얼핏 봤던 그곳, 지금은 명원민속관으로 불리는 한규설 가옥을 찾았다.

바람이 찬 늦가을 오후, 버스7211번을 타고 청덕초교 앞에서 내렸다. 지도를 따라 5분가량 걸으니 도로 곁으로 가지런한 한옥의 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담을 보자 그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에 작게 설렜다.

내부로 들어서니 잘 정돈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것 같았다. 마당은 누군가 비질을 한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장독과 곳곳에 불을 밝히는 등과 네모난 굴뚝, 모든 것은 반듯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옥을 살피며 걷는 내내 은은하게 울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처마 끝에 달려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내는 ‘풍경종소리’였다. 뒤로 북한산을 끼고 있는 한옥과 그 위로 퍼지는 고즈넉한 풍경종소리는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안주인이 기거하거나 며느리나 어린 자녀들도 함께 생활한다는 안채는 대문으로부터 먼 북쪽에 자리 잡았고, 안방, 대청 그리고 건넌방으로 이뤄졌으며, 뒤쪽으로 부엌과 찬방이 있는 구조다. 남자 주인의 공간으로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했다는 사랑채에는 4개로 분할된 문이 있다.

그 문을 열면 사방에서 바람 길이 생기고, 마당의 나무와 담장, 안채의 지붕 선을 따라 그럴듯한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시절에도 형편에 따라 집의 구조는 이렇게나 특별했다.

이 외 결혼 전 딸들이 기거한다는 별채와 하인이 거주하던 행랑채, 등 한규설 가옥은 돌아보면 볼수록 용도가 다른 새로운 공간이 나왔고, 그 규모가 크고 다채로 자칫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1890년경 지어진 이곳은 조선시대 고등재판소 재판장 등을 지낸 한규설 대감의 집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층을 상징하는 60칸 저택이었던 거다. 궁을 빼고는 이리 넓은 고택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문은 주인의 지체를 상징하는 솟을 대문이며,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 하니, 고택 중 꽤 넓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이 집의 위치는 원래 중구 장교동이었다고 한다. 1980년 도시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국민대학교는 새로 조성된 1,359평의 대지 위에 원형 그대로 고택을 이건한다. 간혹 이렇듯 이건한 문화재를 접할 때가 있는데, 옛 모습 그래도 정교하게 옮겨 지울 수 있는 기술이 참 놀랍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녁의 한옥은 그 분위기가 더 고풍스럽게 보였다. 그간 성북구 내의 한옥을 방문하며 느낀 것은 한옥처럼 예민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차이가 뚜렷했다. 오래된 집일수록 꾸준히 보존해야 할 공간이기에 관리와 이용의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원민속관은 국민대학교 후문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국민대가 한규설 가옥에서 명원민속관으로 이름 지은 이곳은 개관이래 안마당을 공연장삼아 춘계, 추계 정기공연을 중심으로 문화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백 년 전, 방과 마당의 면적이 넓어 가족들의 대소사를 치렀던 집이 지금은 학생들의 수업이나 여러 행사의 무대가 되고 있는 거다.

한옥의 정서는 복잡한 도심 분위기와 상반되기에 현대인에게 색다른 감성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한옥을 일반적으로 낡은 것 오래된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 한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제까지 몰랐던 아름다움과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산자락에 의지해 지으면서도 절대 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환경을 잘 이용해 살 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약 백 전 이곳에서 실제 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자기도 했던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팍팍한 일상 속, 한번쯤 선조들의 공간이었던 한옥의 색다른 풍경 속을 거닐어 보자. 뭔지 모를 익숙하고 편안한 정서 속에 머물 게 될지 모른다.

성북마을기자단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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