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살던 지역을 가면 작은 셀렘이 차오른다. 하지만, 기억 속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곳은 드물다. 시대가 변하면서 도심의 풍경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와 트렌드를 좇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곳들의 느낌은 더 특별하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존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2013년부터다. 서울시는 오래된 공간들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하기 시작했다. 국가·서울시 지정·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유·무형 자산이 대상이다. 역사적 사건 및 인물과 관련된 장소나 서울 시민에게 잘 알려진 특색 있는 장소도 포함된다. 기념물을 비롯해 서적, 건물, 예술품, 시장, 골목 등 유형자산과 더불어 기술, 음악, 경관 등 무형 등 서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이 해당된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470여개 유무형의 유산들 중 성북구에서 지정된 미래유산은 2020년 6월 기분 총 22곳이다. 그 중 몇 군데를 소개한다.
53년째 이어온 국시집이 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 4분 거리의 ‘성북동국시집’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 중 하나로 알려진 이집은 성북동과 혜화동에 있는 국시집들의 원조로 불리며, 모 포털에 칼국수 5대 천왕 중 첫 번째로 소개됐다. 2대째 영업 중인 이 집은 경상도식 안동국시를 사용하는 것으로 사골과 양지로 국물을 내고 따로 삶은 칼국수를 넣어준다. 수요미식회, 식객허영만,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정통 한옥 창호지문 장식에 파티션도 한옥 빗살 무의 문장식을 하고 전체적으로 예스럽다 깔끔한 분위기다. (기본메뉴인 국시 1만원)
단 한입에 행복해지는 맛이 있다. 국민 간식 ‘빵’이다. 살짝 배가 고픈 상태에서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갓 구워낸 빵조각을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진다. 그런 집이 국시집에서 3분 거리에 있다. 3대에 걸쳐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운영됐다. 1968년 개업, 지난 2018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나폴레옹 과자점’은 오늘도 빵을 굽는다. 아빠가 퇴근길 사 오신 크림빵을 먹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돼 부모님께 드릴 단팥빵을 구입할 수 있는 거다. 동네에 오래된 빵집은 그래서 더 푸근한 정서가 느껴진다. 서울 3대 빵집 중 하나로, 선정된 이곳은 무려 주차를 돕는 직원이 있다. 20분에 천원의 주차요금이 있지만, 2만 원 이상 빵을 구매 하면 무료다. 나폴레옹 과자점의 빵은 당일 생산, 당일반죽으로 만들어진다. 아울러, 제품이 생산된 날부터 소비자가 가장 신선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인 ‘상미기간’을 알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맛 집을 가려거든 기사식당을 가라는 말이 있다. 여러 동네를 오가는 기사 분들은 맛 집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일 거다. 성북로에도 오래된 기사식당이 있다. 쌍다리 돼지불백 기사식당으로 알려진 ‘쌍다리식당’이다. 1970년 기사식당으로 개업한 가게로 성북동에 위치했던 쌍다리의 이름을 따서 그 주변에 ‘쌍다리’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1111번 버스를 타고 성북구립미술간, 쌍다리앞에서 하차하면 바로 식당 앞이다. 내부가 넓고,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을 위해 좌식 공간도 따로 준비됐다. 오래 동안 그 명맥을 이어오는 식당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본메뉴 돼지불백 9천원)
성북구의 미래유산을 조사하던 중 마음을 빼앗긴 공간이 있다. 항상 지나던 곳임에도 그 존재를 몰랐던 ‘돈암동성당’이다. 4호선 성신여대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볼 수 있다. 돈암동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하여 만들어진 성당이자 1950년대 석조성당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성당의 첫인상은 격조 있는 섬세함이다. 준고딕식 외벽은 그 자체로 숭고함이 느껴진다. 본래 돈암동 인근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들어 일본인이 운영하는 목장이 자리하자, 목장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이 돈암동 근처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가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성북구에는 이밖에 1958년 개업하여 같은 지역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태조감자국’, 한국전쟁 때 북으로 피랍되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며 한을 품었던 장소가 점집들로 마을을 이룬 ‘미아리 점성촌’, 한국전쟁 후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이나 판잣집을 지으면서 형성된 마을로 오랜 세월 누적된 사람들의 삶의 경관이 형성된 마을인 ‘장수마을’ 등이 있다.
이렇듯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공간은 그 자체가 역사와 추억이 된다. 도심 속 오래된 것들을 품고 있는 마을에 더 각별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곳곳에 발굴되지 않은 유산 가운데 미래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누구나 서울시 홈페이지 참여하기 코너를 통해 제안할 수 있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