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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경통신원

우리 동네 숨은 명소 찾기 (3) – 책 읽는 공방 Elig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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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디
2017년 10월 29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엄마의 꿈터! ‘책 읽는 공방 Elig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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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공방 eligere 대표 김규순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맑고 화창한 가을날의 삼선동 풍경은 한적하다. 그러나 삼선교로 10다길에 위치한, 한 집 안에서는 대문 앞부터 안까지 오후 내내 작은 부산스러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3층 주택 담에는 <책읽는 공방 eligere>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올해 9월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가 주최한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만든 현수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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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성북구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참여하여 아이들과 함께 직접 그린 벽화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이날은 책읽는 공방 eligere가 성북구마을만들기 공모사업-청년/청소년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난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공방에 모인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함께한 수업의 결과를 선보이는 날이다. 공방 대표 김규순 씨는 지난 몇 달 동안 아이들에게 직접 엄선한 책을 골라 다 같이 읽어 본 다음 책을 통해 얻은 생각과 느낌들을 염색, 그림, 도자기, 베이킹, 팝업 북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 결과를 담은 작품과 사진들을 아이들과 부모님,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볼 수 있도록 오늘 공방 문을 활짝 열었다. 공방 앞에는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그린, 우주의 풍경을 담은 예쁜 벽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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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다음 각자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해 본 또 다른 책들. 
같은 책을 읽었지만 결과물은 다양하다.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아이들은 이 날,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꼬마 도슨트의 역할을 맡았다. 혹시나 관람객이 안 오면 어쩌나, 문 밖에 표지판도 직접 그려 내걸었다. 공방을 찾은 손님들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책을 보며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보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깨닫고 새삼 감탄하게 되는 작품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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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감동시킨 한 편의 독후감 ⓒ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엘리제레는 3층으로 지은 벽돌집이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고 옥외 계단이 바깥을 두르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오래된 집이다. 색다른 구조를 한 1층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공방으로, 2층은 의상 디자인 작업실로, 3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을 열면 보이는 골목 맞은편 주민들에게 전시회 구경을 권하기도 하고, 손님이 올 때마다 즐겁게 맞이하는 공방 대표 김규순 씨는 올해 삼선동으로 이사 온 지 5년째라고 한다.

“부천에 살다가 거기서 하던 일을 거두고 아는 사람들의 권유로 삼선동까지 왔어요. 이웃을 찾아 온 셈이죠. 여기로 이사올 때 새롭게 <내 인생의 자립>을 하나의 목표로 정했어요. 저는 원래 의상디자인을 하다가 결혼과 육아로 잠시 일을 그만 두고 있었는데요.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를 하면서 내 길을 다져 보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그러나 많은 다른 워킹맘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어린 자녀들의 양육하며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함께 돌보는 방법을 찾다가, 자녀 또래의 동네 어머니들과 육아 모임을 갖게 되고, 아이들을 돌보며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다른 부모님들이 퇴근할 때까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공방에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작품을 만들고 어울려 놀기도 한다. 이렇게 돌아가며 아이들을 봐주다 보니 어쩐지 “내 아이보다는 다른 집 아이들을 한데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다들 돌아가며 같은 마음이다 보면 결국 내 아이도 다른 집에서 더 괴임을 받는 게 아니냐며 김규순 대표는 웃는다. 

아무리 엄마의 입장이라지만,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고, 문을 활짝 열고 동네 사람들이 오며가며 생기는 번거로운 일들이 있을 법도 한데 김규순 대표는 이런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답니다. 그러나 그런 게 다 저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이니까요. 그걸 지켜보는 게 행복해요.” 
김규순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양육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갈수록 개인적이 되어 가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이야기해야 해요.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는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게 참 중요하거든요. 또 제 아이들에게도 그게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갈등도 생기고 번거롭고 불편한 일들도 분명히 생기죠. 하지만 그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잖아요. 아이들에게 불편한 건 무조건 숨기고 좋은 것만 보여주는게 올바른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는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서 나 자신의 생각도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이 일을 지속하는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처럼, 나이들어서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김규순 대표가 삼선동에 차린 공방 엘리제레는, 자녀를 동네 속에서 키워내고, 자신도 성장하고, 또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가 위한 터전인 셈이다. 그에게 엘리제레는 “꿈을 펼치는 공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 성북구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벽화도 그리고 전시회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그는 말했다. 공방 앞 벽에 그린 벽화를 보고 동네에서 자신들의 집에도 그려달라고 요청이 올 만큼. 우리 아이들의 솜씨가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이번 전시회라고 했다. 

나의 아이를 동네 속에서 키우고자 시작한 공방이지만, 마을사업을 만나면서 마을공동체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욱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고 한다. 공방을 만들 때 세운 목표인 자신의 성장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본업인 의상 제작도 더욱 열심히 하고 자신만의 면 생리대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또 자수나 의상 리폼 등 생활 예술을 배울 수 있는 강좌도 열려고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해내려면 더욱 바빠지겠지만 그와 같은 꿈을 찾는 사람들을 돕고 싶기에 구상을 멈출 수 없다는 김규순 씨. 마을 안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터전으로 책읽는 공방 엘리제레가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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