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영역으로 건너뛰기
성사경통신원

지사의 길, 시인의 길 – 이육사의 삶과 시

사용자의 프로필 이미지
by 진느
2018년 5월 25일

20180518_204913.jpg여담7.jpg

ⓒ성북마을기자단 강수연 



제 아버지 이육사는 아이보리 양복에 목 타이를 하는 멋쟁이셨어요.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포승줄에 꽁꽁 묶여 용수로 얼굴을 가리신 모습이었어요. 어린나이에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이 컸어요. 청량리역에서 북경으로 가기 전 ‘아버지 다녀오마’ 라고 하셨다는데 그 말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라는 이육사 선생의 딸, 이옥비 여사의 말에 종암동 주민센터 3층 대강당은 하는 탄성소리와 훌쩍 훌쩍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518일. 성북 문화원 주관으로 종암동 주민센터 3층 대강당에서 여담’ 이육사 탄생 114주년 기념 문화제가 열렸다. ‘여담, 다시 타오르는 말들은 성북구의 주요 문인 다섯 명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 하는 2018 성북 문화주간 연속 강연이다. 1부는 58. 1980~1990년대 길음동 산동네 모습을 작품에 담았던 미아리 복화술사 김소진의 삶과 문학, 2부는 510. 보문동에서 살면서 나목’, ‘엄마의 말뚝등을 집필한 박완서 라는 꿈, 3부는 515. 정릉동에서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가 발견한 사람들, 4517. 성븍동에서 시집을 발표한 마지막 선비, 최초의 인문학자 조지훈의 삶과 시는 성북문화원에서 진행됐다. 마지막인 제 5부 지사의 길, 시인의길 이육사의 삶과 시 여담의 마무리 강의는 종암동 주민센터에서 있었다.

 

이육사는 37편의 시를 남겼어요. ‘광야’, ‘’. ‘교목’, ‘절정’, ‘청포도등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죠. 그중 절정’, ‘청포도는 종암동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종암동이 창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호쾌한 웃음과 함께,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김종훈 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이육사는 이황의 14대 손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원록이며, 원삼, 활등 필명이 있다. 이육사에게는 다섯 명의 형제들이 있다. 첫째인 형 이원기는 한학과 신학문에 능통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때 장진홍 의거 사건으로 체포되어 고문당해 별세했다. 셋째인 동생 원일은 서예가로 수차례 투옥 생활을 하였다. 넷째인 동생 원조는 문학평론가로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다섯째인 이원호는 조선일보 지국장으로 활동 했다. 여섯째 이원홍은 화가였는데 19살에 요절했다.

 

이육사는 만 17세에 영천의 대지주 안용락의 딸인 안일양과 결혼하여 아들 동운을 두었지만 만 2살 때 병으로 죽고. 외동딸 이옥비 여사만이 유일한 자녀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육사는 청포도’, ‘광야’, ‘절정등의 출중한 작품을 남긴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국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한 지사이기도 했다. 수차례 옥고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는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의 처남 안병철의 실토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는데 그로인해 그의 부인과 이옥비 여사의 어머니를 멀리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육사가 첫 시를 발표한 것은 1930년이지만 조국의 독립운동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33년도로 독립운동의 경험, 기자의 경험을 통해 시사평론을 집필하였다. 시를 쓰기 시작한 때는 1937년으로 2년 후인 1939년 거처를 종암동으로 옮긴 후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이 때, 그의 대표적 시인 청포도‘, ’절정을 잡지 문장에 발표하였다.

 

육사의 시는 의지적 어조로 조국 독립의 강한 염원을 담고 있다. 또한 한학을 공부한 영향으로 한시의 특성이 잘 융합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육사의 시가 독자에게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로 그의 생각을 담고 있어 독자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청포도에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에서 청포를 입고 온 손님은 과연 누구인가로 평론가들의 의견이 나뉘어진다. 또한 유명한 광야에서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에서 천고의 의미또한 명확하지 않다. 시는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략과 압축으로 숨어 있는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의 묘미일 것이다. 1부에서는 육사의 생애와 대표적인 시에 대해 고려대 김종훈 교수의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20180518_205741여담1.jpg

ⓒ성북마을기자단 강수연 

2부에서는 성북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4인조 록밴드 빈티지 프랭키의 공연이 있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 ‘절정등에 직접 곡을 붙여 부르는데, 웅장하고 강인한 육사의 시가 록 음악으로 전해질 때 사람들은 또 다른 감동으로 몸을 들썩였다.

 

3부에서는 나의 강철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이옥비 여사와 작가 김서령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어린 시절 옥비 여사와 도장 찾기 놀이를 해주었던 이야기는 지사도, 시인도 아닌 아버지 이육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 힘들었던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담 후 관객과 질의 응답시간에 우리 아버지도 육사 선생처럼 독립 운동가였어요. 유공자로서 아무런 혜택을 받은 적이 없어요.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그 고생을 같이 했다는 생각에 옥비씨가 동생으로 느껴져요.”라며 눈물을 흘리신 연세가 여든이 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장내엔 숙연함이 감돌기도 했다. 애국지사 유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끝으로 이병한 종암동 주민 자치위원장의 올해 종암동에 건립 예정인 이육사 문학관에 관한 설명을 했다. 향후 종암동 주민자치위 아동 교육 분과는 이육사 문학관 관련 알알이(알고 알리는 이) 홍보활동을 계흭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2018년 종암동은 이육사의 다시 타오르는 여담을, 새로운 여담을 쓰고 있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강수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