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털리’가 만든 <건축학본론>, 함께 보실래요?
함께하는 성북마당에서는 ‘우리 모두 주인공인’ 마을방송(미디어) 설립의 꿈을 안고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서울시/영진위 지원 사업) ‘시끌시끌 성북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기 활동을 갈무리하며 ‘이웃주민’이 글을 정리해봤습니다. 우리들의 숨겨진 ‘자발성’을 자주 엿볼 수 있었던 시간,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웠던 나날들, 다시 한번 돌아볼까요?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bit.ly/PKixJa)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10일. 평일임에도 업무를 잠시 접어두고,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향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성북구의 이웃 3인(닉네임: 꼽사리, 댕이쌤, 문수)과 함께였다. 더불어, HD급 영상카메라, 위용 있는 커다란 삼각대 등의 촬영장비를 지참한 채로.
나름 우리는 다큐를 찍고 있는 촬영팀! 우리가 이번 작품의 주요인물로 삼고 있는 ‘성북구의 연극인’이 포함된 팀을 쫓아다니다보니, 포항까지 가게 됐다. 그들이 지난 몇 주간 연습한 ‘촌철살인굿’이란 작품을 공연하는 첫 무대가 ‘포항바다국제공연예술제’였기 때문이다.
포항까지 내려가서 촬영한다고 하자, 이런 의견도 있었다.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취미로 연습 삼아 배우고 있는 건데,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 있어?”
사실 우리는 어디에 ‘출품’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직업이나 일로서 돈을 받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본업을 미뤄두고, 일터엔 휴가서를 던지고 외지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마도 즐거웠기 때문인 것 같다. 함께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일터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신선한 재미를 줬다. 포항행은 그 연장선상이었다.
포항 촬영은 결과적으로 대실패였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바닷가 야외공연은 취소되고 말았다. 속된말로 ‘멘붕’상태에 빠진 우리들. 이윽고 대책회의에 나섰다. 짜놓은 계획과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큐는 현실적 변수 통제가 매우 어렵다는 걸, 우린 몸으로 부딪혀가며 뼈저리게 느꼈다.
단체로 휴가내고 카메라 들고 포항으로… 그들은 왜?
지난 4개월여의 함께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마을다큐 제작팀’이란 또 하나의 얼굴로 살았다. 나(이웃주민)는 카메라촬영을 전담하는 ‘촬영감독’이었다. 문수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였고, 파릇파릇한 10대 ‘구라’는 ‘편집감독’이었다. 살림꾼 ‘누리’는 ‘프로듀서’, 센스 있고 고집 있는 ‘댕이쌤’은 ‘감독’을 맡아 활약했다.
포항행을 결행한 우리팀(그들은 왜)을 비롯해 총 3팀이 미래의 ‘성북마을방송’을 꿈꾸며 영상미디어를 배웠다. 서울시·영화진흥위원회 주최의 마을미디어 육성프로그램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의 일환이었다. 성북구에서는 성북구 단체·주민들의 모임 ‘함께하는 성북마당’이 참가했다.
신기하게도 10대 청소년부터 60대 왕언니까지, 다양한 얼굴의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또한 마침 이웃 중에 영상과 다큐제작이 업인 전문가(닉네임 ‘스파이’)가 있었다. 강사도 주민이다 보니, 배움을 전수하고 훌쩍 가버리는 ‘전달자’가 아닌, 함께 동고동락하며 마을미디어팀에 녹아드는 친근한 조력자이자 주역이 됐다. 가끔씩 심화학습을 위해 초대하는 전문강사 역시, 근처에 살고 있는 ‘동네사람’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재능을 전수받아 마을방송의 새싹을 틔우고 있는 셈이다.
배운 걸 토대로 만든 아직은 설익은 영상을 두고, 서로 돌려보며 품평하는 시간. 베테랑들이 많았던 ‘먹고 놀자’팀은 ‘마을에서 사회적 경제로 하루를 살아가기’란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첫 장면에서 우리가 주먹밥, 국수 등을 자주 애용하는 마을기업 ‘동네국수’가 등장해 주민들이 전날의 숙취를 동네국수의 ‘착한 국수’를 먹으며 해소하는 모습이 나왔다. 출연자가 누군가 봤더니, 바로 나의 일터 아래층에서 일하는 익숙한 얼굴이더라. 만날 보는 사람이 어색하게 ‘오버액션’을 취하는 걸 보니, 이유 불문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꽃밭’이었던 ‘미스털리’팀은 ‘첫사랑의 달콤쌉싸롬한 기억 속에서 성북구 문화유산 발견하기’를 주제삼아, 성북구의 ‘주요 명소’ 공간과 ‘미스터리’ 형식을 결합한 영상물, 이름하야 ‘건축학본론’을 기획했다. 영상을 틀자, 삼선동 장수마을 위쪽의 운치 있는 성곽길이 오묘한 분위기로 나왔다. 숲과 오래된 성곽, 구불구불한 산책로가 조화를 이룬 내가 무척 좋아라하는 공간, 이곳이 독특하게 재구성돼 눈앞에 펼쳐졌다. 친근한 곳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호기심을 끌었다. 옆에서 함께 영상을 보던 우리팀 프로듀서 ‘누리’의 말
“아는 사람이 나오니까, 그냥 재미있어요!”
문득 우리 교실의 정신적 지주인 ‘야구감독'(닉네임)이 마을미디어를 배워 보자며 한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들렀던 한 단체행사에서 자신들의 활동상에 대한 영상을 틀어줬는데, 서로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깔깔대며 즐거워할 수 없더라고. 결국 사람들이 가장 유심히 보며 즐거워하는 영상은 ‘자기 자신’ 혹은 ‘주변 사람’이 나오는 장면이란 걸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고. 인연과 관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자극할 수 있는 건, 중앙미디어는 결코 할 수 없는 마을미디어의 영역이라고.
이 이야기를 들은 얼마 후,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을미디어교실에 합류하게 됐다. 단순히 ‘시청자’가 아닌, 나와 내 이웃들이 ‘제작자’도 ‘주인공’도 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시도들을 여럿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자발성, 결국 ‘마을영상 콘서트’ 개최까지 이끌다
피로한 퇴근시간 이후 진행된 우리모임의 출석률은 항상 거의 90%대를 유지했다. 정규 수업은 기본이었다. 스스로 자청한 주말촬영, 밤샘편집 등도 잦았는데, 힘들다기보단 밝고 호기심에 깃든 표정들이었다. 이런저런 교육을 많이 받아보고 주최도 해본 사람으로서, 솔직히 놀랐다. 우리는 영상, 미디어 전문가도 아니고, 이걸로 먹고 살려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런 자발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기초교육과 기획과정을 마치고, TV에서나 보던 커다랗고 묵직한 촬영카메라를 들던 첫날, 서로를 연습 삼아 찍으며 해맑게 들떠있던 우리들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후, 우리는 실제 마을의 다양한 소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우리 손으로 영상제작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영상에 출연하는 주연과 조연이 됐다.
그러고 보니 마을영상을 배우고 촬영한 시간들은, 우리가 ‘직접’, ‘주인공’이 돼 일을 벌이고 수습해간 나날들이었다. 관객과 소비자로서 ‘잘 차려진 진열된 상품’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설프고 미약하더라도 직접 주역이 돼 만들어내는 활동을 했다. 이런 자발성에 대한 우리들의 숨겨진 욕구를, 나는 이번 활동을 통해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이 자발적인 에너지가 결국 일을 하나 더 벌였다. “전문가들만 영상, 영화제를 하란 법 있어? 우리도 주변 이웃, 친구들을 초대해 마을영상제를 열어보자!”란 생각이 끝내 현실이 돼버렸다. 우리가 만든 영상물을 토대로, 흥겨운 콘서트 형식을 빌린 ‘시끌시끌 성북이야기 영상콘서트’를 성대히 개최하기로 한 것(21일 오후6시30분 성북구청 바람마당.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고, 우리의 품을 보태 만들어낸 행사다).
초보자들이 겨우 서너달 경험하며 찍은 작품들이다. 분명 어설프고 어색하고 많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반응처럼 우리와 옷깃만이라도 스쳤거나, 마을의 소재거리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웃고 깔깔대며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결과물은 물론, 우리들이 참여했던 ‘과정’을 이번 행사를 빌려 이웃들과 함께 갈무리하고 싶다. 나아가, ‘우리 모두 주인공인’ 마을미디어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과 21일 저녁을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