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공모사업 기록영상물이 성북구청 4층 아트홀에서 상영되던 날, 나의 애착물이라서인지 뭉클한 마음이 복받쳐 누가 볼까봐 남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물론 그동안 내가 담아다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 감명도 있었지만.. 정성껏 찍어다 모아놓은 각 단체의 영상이 너무도 짧아서 참 허탈하고 사업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34개 단체를 20분짜리로 만들려니 한 단체당 30초 정도 밖에 넣어주지 못한 것이 애써 일해 온 사업들의 수고로움을 다 전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기 때문이지요. 작게는 2~30분 길게는 2시간씩이나 찍어서 그 단체의 핵심을 살려주고 싶어 고르고, 또 신경 쓰느라 밤잠을 설쳤는데 말입니다.
촬영 다니면서 있었던 웃는 이야기하나 할까요?
“안녕하세요? 성북마을방송 와보숑TV에서 촬영 나왔습니다.”
그렇게 인사 소개를 하면… 내 뒤쪽에 누가 오나 하고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먹은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 있으니
젊은 촬영기사가 뒤따라오겠지 라고 생각했겠지요? 하하하
주먹만 한 작은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들이대도 웃음으로 반겨 주시고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떨린다고 하시는 순박한 사업가들도 있었습니다.처음엔 의아해 하던 분들도 촬영하고 난 뒤에는 대단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만,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마을뉴스 영상 찍으러 다닌다고 했더니 엄마가 뭘 그런 것 하느냐고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큰 카메라는 무겁다, 작아도 기능이 좋으니까 이것으로 찍어도 되는 곳만 찍으라고 막내아들이 카메라를 새로 사주었습니다.(자랑인가?) 봄부터 촬영을 시작했지만 주로 10월과 11월에 행사들이 밀집해 있어서 촉박한 일정에 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촬영 다니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여러분들의 온정 때문일 겁니다.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처음 들었을 땐, 저도 이해가 안 가서 의아했습니다. ‘옆집도 모르고사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무슨 마을사업을 한다고 할까?’ 하고요. 그런데 공모사업단체들을 촬영하러 다니면서 느낀 것은 함께 더불어 모여 사는 것이 너무도 보기 좋고 행복해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업행사 장면도 좋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만나면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이 큰 보람이고, 참 좋습니다.
성북구 공모사업하시는 사업 활동가 여러분! 그리고 나를 안내해주고 함께해준 김기민, 홍수만, 청년 활동가들 모두 고맙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을방송 와보숑에 몸담고 촬영한다고 열심히 다니다보니 덕분에 제게 돌아온 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시 마을미디어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데 와보숑에서 저를 추천 해 줘서 스타상을 받았습니다, 나이 먹었다고 경로우대 한건지도 모르지만요, 하하하
와보숑은 서울시 전체에서 대상을 받았고요. 나이 탓인지, 성격 탓인지, 아니면 원래 가진 끼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나타내는 것을 은근히 좋아한답니다.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찍어다 뉴스도 만들고, 단편이지만 배우도 해보고, 앵커도 해보고, 리포터도 해보았지요. 와보숑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체험했으며 안목이 많이 넓어지고, 속된말로 많이 컸습니다.^^ 원래 하던 것과 더하면 이제는 여자가 할 수 있는 멋진 타이틀을 원 없이 거의 다 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 싶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이 먹은 사람이 촬영을 하러 다녔는지, 왜 젊은 사람들이 하는 그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지요? 자~ 이제부터 제가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섬진강 맑은 물가 아담한 동네 빈농의 7남매 중 3째 딸로 태어났고 아들을 선호하는 가정에서 애정결핍증에 걸려 자랐으며 형편상 많이 배우질 못했다. 아들만 3형제 둔 양반가문의 막내아들과 결혼해서 1녀 2남을 낳아 아주 잘 키웠으니 나라에 충성한 셈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주부가 60살까지 직장생활을 했으니 힘들고 바쁜데도 못 배운 것이 한이 매쳤고 끼도 많고 샘도 많아 뭐든지 배우는 데는 게을리 하지 않았더니만, 오늘날 내 이름 뒤에다 기자라는 명칭을 붙여주는구먼~ 허 허~ 그냥 감사할 뿐이다.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잘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 가능한일이라 믿는다. 아멘 슬플 때 만 우는 건 아니지? 쓸모없는 가시내로 천대하며 키웠다고 돌아가실 때 까지도 원망했던 천국에 계신 내 어머니를 목 놓아 크게 부르면서 울고 싶다.
“어머니!”어머니의 못난 딸이 기자래요 기자가 되었다고요~ 흑흑
(지금 내 얼굴엔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 양 볼을 타고내리고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하여 좋은 기사는 쓸지 못쓸지 모르지만, 나처럼 많이 배우지 못해서 글로 표현하지 못한 소외계층 사람들의 대필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지금 내 심정을 여기에 담아두고 되새기며 채찍을 가하려 한다.‘
위와 같이 쓴 글은 2011년 6월 기자가 되면서 쓴 제 프로필로 지금까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실버넷뉴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행복부 차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미디어 교육에 관심도 있었지만, 그때 당시 사회적기업인 뉴시니어라이프 모델교실 직원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2012년 시끌시끌 성북이야기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에서 수강생을 모집하였는데 사회적기업인 단체에 속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서 회장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니어모델인 나이 많은 제가 자격이 된 거였답니다. 패션쇼 할 때 동영상을 찍어서 보는데, 편집하기 어려워 부족한 부분을 배우려고 왔다가 1기부터 4기까지 공부를 했고, 와보숑TV에 창시 멤버가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반응이 빠르고 배우는 것이 많아 저는 더 젊어진 것 같고 좋은데, 그들은 제가 답답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각자 생업이 있어서 낮 시간에는 바빠서 활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모사업 촬영을 나이 많고, 시간 많은 제가 맡게 된 것이고요.
제가 서울마을미디어 활동가들 중에서 최고 연장자랍니다. 그 말을 듣는 분들은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주책없다고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마는 마음은 청춘이고 아직은 ‘나이 먹어서 못해‘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다만 남은 날이 적다고 생각하면 뭐든지 더 열심히 많이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젊었을 때는 시간 귀한 줄을 몰랐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에 앞으로도 제 삶에 도전장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응원에 한 표 주시지 않으렵니까? ㅎㅎㅎ
2014년 12월 성북마을방송 와보숑TV 장남순
– 활동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