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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사

[독서의달] 화가와 작가의 공존, 장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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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2018년 9월 21일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신간 코너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훑어보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분야나 관심 있는 작가의 책들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 그중 책들의 표지를 보고 책을 선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책 표지. 특히 외국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들에 비해 유난히 예쁘고 세련되기까지 한 한국의 책 표지들에 관심이 많던 차에 ‘책 속의 화가’ 展이라는 기획 전시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북구립미술관을 찾았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고즈넉한 성북동 길에 위치하고 있는 성북구립미술관은 내년이면 개관 10주년을 맞는 서울시 자치구 최초의 구립 미술관이다. 특정 작가가 중심이 되는 미술관이 아닌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중점으로 전시 기획을 잡고 다루는데, 2018 ‘책의 해’를 맞아 이번 전시가 기획되었다. 전문적인 북 디자이너라는 직군은 1980년대 이후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 전 시대에는 화가들이 장정(사전적 의미는 책의 겉장이나 면지, 도안, 색채, 싸개 따위의 겉모양을 꾸밈, 또는 그런 꾸임새 등이다. 그러나 근대에 사용된 장정이라는 용어는 화가들이 주로 맡았던 ‘표지 디자인’을 지칭하였으며, 상황에 따라 표제지, 면지, 케이스까지 아우르기도 했다 ?성북구립미술관 보도자료 인용-)을 제작하기도 했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출간된 단행본 및 문학지, 아동도서 등 30여 명의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표지 장정, 삽화 등이 포함된 도서 320여 권을 전시하고, 화가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회화나 드로잉, 삽화 원화, 판화 등 관련 작품 또한 40여 점이 전시되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전시의 시작점인 미술관 3층의 제1전시실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와 한국전쟁 해방 이후에 활동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원색의 벽 색상으로 시대와 화가들을 구분해 놓아 화가 한 명 한 명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해 놓았다. 성북동에 자리 잡아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풍경 등을 작품이나 책표지에 활용한 작가들이 몇몇 눈에 띄었는데, 이들은 작품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장정으로 활용했다. 대동강 변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던 평양 출신 윤중식 화백은 논밭, 비둘기, 석양의 풍경 같은 이미지를 작품과 장정에 나타냈고, 심플하고 단순한 선이 특징인 백영수 화백의 작품들은 장정에서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갸우뚱한 얼굴의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장정을 책의 콘셉트이나 책 내용에 중점을 두어 화풍까지도 다르게 표현한 화가들의 작품도 눈에 띄었는데, 대표적으로 변종하 화백과 정현웅 화백을 들 수 있다. 문학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그렸던 변종하 화백은 1972년 창간된 문학사상의 표지 콘셉트인 ‘모든 문인의 초상화’라는 특징에 맞춰 서정주, 김관식, 최남선 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같은 사람의 그림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 때 월북 하여 최근 들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화가 중 한 명인 정현웅 화백은 책마다 스타일과 구상이 다른데, 특히 책의 내용을 디자인으로 적용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장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장정을 단순히 책표지로 국한하지 않고 본인의 예술적 실험이나 작품세계의 연장선으로써 활용한 화가들도 있었는데, 한국동양화역사에서 추상화를 처음으로 시도했던 1세대 작가이기도 한 서세옥 화백과 ‘한국의 프리다 칼’로 라고 불리는 천경자 화백을 꼽을 수 있다. 서세옥 화백은 지금은 많이 하지 않는 분야인 전각예술을 장정에서 활용하여 표현하기도 했고, 자화상 같은 여인의 얼굴과 화려한 색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던 천경자 화백은 장정에서도 여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글을 쓰고 책표지를 그리기도 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그 외에도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창간호 표지와 마해송 동화작가의 ‘모래알 고금’에 쓰인 작품과 책등을 볼 수 있는 이중섭 화백의 그림들과 김광섭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 외에도 김향안 수필가의 책표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의 표지를 그렸던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70년대 이후에는 많은 작가가 장정 작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책 표지나 삽화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늘었지만, 동시에 작가들의 참여 개수는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 활동하던 화가들은 제2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일본에서 유학한 화가들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교수들은 유럽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록 일본에서 유학했더라도 유럽의 입체파나 표현주의, 야수파 같은 서양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입체파, 피카소에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의 작품을 펼친 김영주 화백이나 문학진 화백 같은 경우에는 작품에서 그 특징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인물묘사에서 피카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김영주 화백은 장정에서도 작품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형태보다 구상과 배치에 중점을 둔 작품을 선보였던 문학진 화백은 장정에서는 완전한 추상 형태의 드로잉을 그렸는데, 작품과 표지디자인을 나란히 비교해서 보는 것도 전시를 감상하는데 소소한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였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명성황후 포스터로 유명한 이만익 화백의 그림과 장정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단순한 선과 선명한 색감으로 한국적인 느낌을 가장 잘 살리는 서양화가로 손꼽히는 화백이다. 그는 화가로서 나타내기 어려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턱을 괴고 있는 인물의 이미지로 표현하고는 했는데, 장정에서도 그런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동양화가지만 풍경, 인물, 정물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장르에서 탁월함을 선보였던 송영방 화백의 작품들과 삽화가로 더 유명한 우경희 화백의 작품과 장정들 또한 전시되어 있어서 70년대 전후 화가들의 작품 변화나 스타일 또한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제2 전시관 한켠에 마련된 전시연계 프로그램에서는 ‘마이 리틀북 스토리’라는 소제목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와 ‘엽서, 책갈피, 배지 만들기’가 운영되고 있었다. ‘나만의 책 만들기’는 주로 부모님과 동반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엽서, 책갈피, 배지 만들기’는 일반 관람객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 속에서 사용되었던 화가들의 작품 이미지가 새겨진 도장으로 나만의 엽서나 책갈피, 배지를 만드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참가비도 저렴하여 부담 없이 만들기 좋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엽서를 만들던 어느 관람객은, 옆쪽으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직접 만든 엽서 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남은 오후를 이야기로 채워가는 모습이었다.

“책 표지만 놓고 봐도 작가분들의 다양한 화풍을 볼 수 있어요. 책이 숨겨진 문인들과의 관계도 담고 있고 만들어지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흥미롭지만, 작가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인쇄물이라는 이유로 원작보다 중요하게 취급받지를 못하거나 단순히 아카이브 개념으로만 많이 취급됐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책 속의 삽화들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 깊고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각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 김경민 학예연구사의 말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책표지로 쓰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 첫 마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비록 1950, 60년대에는 생존 방법으로 장정과 삽화 활동을 했다고는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시도하고, 또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키우면서 출판예술이라는 영역을 구축한 그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도슨트 프로그램은 정말 추천해요. 특히 이번 전시는 화가분들과 특정 문인들과의 인연이나 관계들이 많이 나타나는 전시거든요. 도슨트를 들으면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라, 제가 정말 이 전시 제목처럼 책속에서 화가들의 이야기를 같이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전시 때도 도슨트를 진행할 인턴 김혜원님의 말에 용기를 얻어 도슨트를 부탁드린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김경민 학예연구사를 기다리며 궁금해하던 작품에 대해 잠깐잠깐 설명해주던 그녀의 반짝이던 눈빛처럼 나 또한 책 속에 남아있던 그림들과 더 가까워지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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