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양도성 성벽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곧 성북동. 오늘날 ‘성북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20개 행정동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 걷노라면 결코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동네가 바로 이곳, 북악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작고 조용한 마을 성북동이다.
성벽 북쪽 마을이 겪어야만 했던 아픈 수난의 역사
그러나 한때 성북동 마을 이름의 그 유구한 역사마저 훼손될 뻔했던 시절도 있었다. 구한말을 넘어 불우한 시대인 일제강점기가 도래하면서,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한양도성의 성벽이 조각조각 찢겨 해체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가령 숭례문에서 남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이후 한양공원과 조선신궁으로 바뀌었다. 광복 이후에도 성북동은 ‘성벽 북쪽에 있는 마을’이 될 수 없었다. 한양도성 성벽이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2006년 철거하기 전까지, 1969년에 조성된 동‧식물원과 분수광장이 한양도성 성벽의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30년이 족히 넘는 세월 동안.
그러한 가운데 옛 조선 왕조의 유구한 수도 ‘한양’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경성이 되었다가 광복 이후에 비로소 서울이라는 이름에 닻을 내렸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미 한양도성 성벽의 대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
광복 이후 들어선 새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분명했다. 일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새 수도로서 서울을 다시 활기차게 가꾸는 일이었다. 비록 이러한 계획은 뒤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잠시 미뤄졌지만, 결국 당시의 집권 세력에 의해 ‘새로운 서울’로서 신도시 강남 3구의 개발이라는 역사를 낳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개발은 남북 갈등이 극에 달했던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정부에 의해 자행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등을 희석하기 위해서라도, 유사시 정부의 주요기능이 한강대교가 끊김과 동시에 마비되던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북에 밀집된 정부 주요기관과 서울의 인구는 반드시 한강 이남으로 분산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서울의 야경에 지대한 공헌을 할 강남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했다.
자연스레 구 한양도성 성벽이 자리하고 있었던 강북 지역은 정부 정책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이른바 오늘날 상당수의 지방에서 겪고 있는 ‘원도심’의 소외 현상이 서울에서도 이맘때쯤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게 다시 또 오늘, 서울시와 정부의 관심은 점점 슬럼화되는 서울의 옛 중심, 한강 이북 지역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물론 이미 여러 서울시장을 거치며 그러한 ‘강북 살리기’의 시도가 청계천 광장 사업과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여러 굵직한 프로젝트로 존재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단지 시장의 치적 쌓기다”라는 비판이 겹치며, 용산 철거민 사태 등 여러 아픈 상처까지 남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성곽길, 오늘의 한양도성순성길을 다시 세우자는 프로젝트는, 바로 그때부터 조금씩 시작되었다.
길이 미래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
당시만 해도 단지 성벽을 새로 쌓아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흥미로운 서울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만 그칠 것 같았다. 솔직히 미미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근 몇 년간 사회 각계각층에서 신선한 화두로 자리매김한 ‘도시재생’의 맥이 더해지면서, 드디어 진짜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이러한 한양도성 복원 사업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성벽 북쪽에 있어서 성북동이 되었다는 이곳 성북마을의 이야기도, 그렇게 어깨에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끊겼던 마을 길을 새로 정비하고 성벽 곳곳에는 문화해설사의 투어를 배치했다. 마을 곳곳에, 행정동 곳곳에 표지판을 설치해서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알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뭔가 조금 부족했다. 역사는 있는데 오늘의 마을이 부재한 까닭이다.
그렇게 역사를 넘어 ‘오늘’의 마을을 다시 쓰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 있으니, 바로 마을공동체사업이다. 성북마을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의 길을 다시 엮고, 그 안에 다시 공동체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담기 위한 거대한 작업이다.
결국에는 길이 미래다. 마을의 사이사이, 공동체와 공동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 길을 제대로 살리는 일만이 우리의 성북마을을 비로소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김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