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던 지난 11월 14일 목요일 저녁 7시. 시험을 지르는 수험장도 아닌데 사람들로 가득 모인 곳이 있었다.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이 아닌 가족들에게 저녁밥을 챙겨주고 부랴부랴 달려온 주부들이 대다수였다.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무료공동영화상영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시네센터에서는 무료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꽤 많고, 그런 프로그램을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 보았다. 그만큼 상영된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이었다. 개봉 전부터 이슈를 끌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 자체가 크나큰 이슈를 끌었던 베스트셀러였고 나 역시 읽어본 작품이다. 그러나 상영 영화가 꼭 ‘82년생 김지영’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아리랑시네센터로 향했을 것이다. 주최하는 곳이 성북구 노동권익센터였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성북구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 준 성북구 노동권익센터는 2017년 7월 성북구 장위동에 개관하였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취약계층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통한 노동인권 향상과 관내 노사관계 안정과 기업 및 노동조합의 지속가능성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센터이다. 노동 법률상담 및 법률지원, 노동법 교육, 문화·복지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자 및 구민 여가 활동 지원을 위한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무료공동영화상영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성북구 노동권익센터 무료공동영화상영회는 이전에도 몇 차례 진행했었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만큼 뜨거운 호응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상영관 하나만을 대여했지만 이번에는 두 개의 상영관을 대여했음에도 전석 매진되었다. 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찾아가 명단을 체크하고 맛있는 떡을 받았다. 저녁 시간대라 미처 식사를 챙기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식까지 나눠준다. 표와 떡을 받아들고 상영관을 찾기 위해 로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인사 소리가 들려온다. 많은 구민이 모인 만큼 아는 분들도 많고 반가운 분들도 많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부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목이 메오기 시작한다. 이미 소설로 읽었던 이야기였고, 더군다나 소설은 내 취향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감정이 요동칠 줄 몰랐다. 이야기의 흐름에 감정을 불어넣어 공감을 끌어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벅차다. 엄마가 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살기는 어디 쉬운가. 아빠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어디 가벼운가. 영화를 단순히 성의 대결로 본다면 참 아쉬운 시선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우리나라에서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있지 않다고 해서 힘겨운 사람을 이해할 줄 모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의 시작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