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고 관계를 단절시켜 불안과 우울을 생산해냈다. 확진자 5명 중 1명은 ‘정신건강 이상’ 판정을 받았으며 격리자 대상으로 면밀한 정신건강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에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지역주민의 마음건강을 챙기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올 초 문을 연 성북구 심리지원센터도 그 중 하나다. 그 현장을 찾아 누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성북구 심리지원센터는 오패산로 23번지 도로변의 건물 2층에 위치했다. 밝고 포근한 느낌의 내부로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이 흘렀고 테이블마다 놓인 꽃에 기분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희망실과 행복실의 분리된 공간에서 개인적인 상담을 할 수 있었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줄 수 있는 안마기와 스트레스 측정을 하는 기계도 준비돼 있었다.
“이곳은 코로나19로 인한 직·간접 영향으로 고통 받고 계신 지역 주민들을 위해 심리지원을 해 드리기 위한 곳입니다. 지원대상은 코로나19 확진자, 완치자, 자가 격리자 및 유가족, 코로나19관련 종사자로 소방관, 경찰관, 의료진과 응급요원 등이 포함됩니다. 상담과 더불어 자가 검진 기계를 활용해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고, 휴게공간에서 정신건강정보 및 관련 상담을 제공받을 수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속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가볍게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정마다 뚜껑을 열어보면 정말 다양한 문제로 힘든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성북구 심리지원센터의 박준희 임상심리사의 얘기다.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인 지난 1월 말부터다. 내부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의외의 분들이 많이 오시기 시작했어요. 이곳은 코로나의 여파로 힘든 구민들을 지원하는 곳인데 ‘직장갑질’이나, 인간관계, 가족관계 혹은 경제적 문제 등 주변상황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며 찾아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중 정신건강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경우 중 일부는 관련된 기관으로 연계해 드리고 있고, 또 상담을 통한 심리진단 결과 고위험자로 진단된 경우에는 성북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추후 상담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우울은 어쩌면 코로나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실제 코로나로 인한 문제를 지닌 사람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심각했다.
“치매전문기관과 노인돌봄기관, 다문화센터나 자살예방센터도 있지만, 그 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았어요. 코로나의 여파로 생긴 경제적인 문제로 사채를 써서 사기를 당해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남편이 직장을 잃고 집에 있다가 발생하는 부부싸움이 아이들한테까지 연결되기도 하지요. 또, 임산부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출산 후까지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산후 우울증이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확진자였던 분들의 우울은 더 심각했다. 공무원으로 일선에서 일하셨던 대상자는 초창기에 감염이 돼 개인정보 보호가 안 됐고,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병균 취급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고, 아무도 믿지 못한 채로 1년 넘게 혼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분의 유족이셨던 어떤 분은, 남편분이 대학교수신데 제자가 사준 밥을 먹다가 감염이 된 경우였어요. 완치 한 달 후에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로 아내분의 충격이 너무 컸고 그만큼 힘들어하셨지요. 확진자 중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는 분의 경우는 어디서 감염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그 사실이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일거리가 하나도 없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힘겹게 털어놓는 상담자 분들이 센터를 찾기까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센터가 운영을 하려면 어떠한 근거로 사람들이 방문하는지 자료를 남겨야 하거든요. 때문에 상담을 하기 전에 신청서를 받게 되는데 이때 걱정하는 분들이 계세요. 혹시 자신의 이야기나 정보가 새나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시는 거죠. 그럴 때는 상담사라는 직업윤리 상 비밀유지 서약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 설명을 해 드립니다.”
성북구에 심리지원센터가 생긴 지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다. 홍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버스나 지하철 광고, 그리고 주민센터나 아파트 관리 사무소 등에 현수막을 걸고 유관기관에도 전단지나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현재는 도시관리공단과 성신여대와 MOU를 맺어 한 달에 한번 이동 상담도 실시하고요. 사실, 작년에 기획 할 때만해도 서울에 이와 같은 센터가 거의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서울시정신건강센터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와 같은 기관이 서울에 10군데 정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코로나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관계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지요.”
정말 심각한 우울증인 경우 집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비대면 상담도 가능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분들이 스스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질문을 구성 했다.
“기본정보로 전화번호만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 동의 후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요. 그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증상이 심한 경우엔 저희가 동의한 번호로 전화를 드립니다. 홈페이지 개설한지 두 달 정도 됐는데 많이 사용을 하고 계세요. 처음엔 성북구청과 성북정보도서관에 키오스크를 통해서 진단할 수 있도록 조성했는데 부족해서 모바일과 PC홈페이지로 검사할 수 있도록 했고, 노인우울이나 스마트 중독 같은 부분을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박준희 상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백을 들고 왔다, 상담을 마친 분들께 드리는 선물인 ‘회복키트’였다. 상자 안에는 디퓨저, 녹차와 메밀차, 수면안대와 마스크, 향기 나는 손소독제와 작은 텀블러가 담겨 있었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마음이 힘겨운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2년 동안 고립을 강요당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우울한 마음을 어디에도 표현하지 못한 채 말이다. 심리지원센터는 더 이상 견디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라고 토닥여주는 장소인 듯했다. 이러한 공간이 우리 동네에 생겨 반가웠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 땐 심리지원센터에 문을 두드려 보자. 때로는 나의 문제를 표현하고 공감을 받는 것만으로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박은영 마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