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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사

정릉 교수단지 정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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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북마을
2019년 5월 31일

“이야,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네.”

“너무 예쁘다! 꼭 카페같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감탄사가 들렸다. 미술관이나 카페 거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집의 정원들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5월 17일과 18일, 정릉 교수단지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마을축제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를 열었다. 총 13개 집의 정원이 참여했고, 다양한 체험 및 전시, 공연과 먹거리 판매 등이 이루어졌다. 집에 사는 주민이 예쁘게 꾸민 정원을 오픈하면 그 공간을 재능을 가진 또다른 주민이 볼거리로 채워넣고 안내도 하며 정릉 교수단지를 축제의 장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우선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부터 조선왕릉 정릉방향으로 언덕을 따라올라가다보면, 교수단지 입구가 나오는데 “주민들의 스토리가 있는,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라는 리플렛을 받아들고 지도에 나와있는데로 정원을 하나씩 하나씩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마주친 곳은 <목화향기>였다. 최용백 어르신은 목화향기 정원에서 즉석으로 오가는 사람에게 가훈을 써주고 있었다. 주변으로는 직접 쓴 붓글씨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바로 옆 쉐르미용실은 80세 이상 여자 어르신의 커트와 염색을 무료로 해주는 행사를 열었다. 길을 따라 들어가니 백세며느리댁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초록색 애벌래였다. 예쁘게 꾸민 정원안에 곤충선생님이 여기저기 갖다놓은 곤충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곤충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도마뱀, 자벌래, 나비애벌레 등을 직접 만나고 배우는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잊지못할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곳에서는 수제사탕도 판매하고 있는데, 시식도 해 볼 수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니 매화향기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내 텃밭에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예쁜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 하모니뜰과 도도화 사이 차고에는 꽃비빔밥, 소떡소떡, 야채전 등을 판매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먹거리를 사서 하모니정원의 잔디밭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둘러앉아 먹기도 하고, 맞음편인 행복한 뜰의 야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모니 정원에서는 하모니카합주, 밴드 공연 등 정원음악회를 즐기는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도자기, 스피커, 자수에코백도 판매한다고 한다. 행복한 뜰에서는 캘리그라피 전시가 한창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도도화라는 펫말이 나왔다. 도자기와 함께 도란도란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의 종류가 많고,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있는 정원이라고 한다. 들꽃 자수 전시, 발효차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정원 안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러들어와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꽃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선이 머무는 집이라는 푯말이 붙은 집을 볼 수 있었다. 겉에서 봤을 때는 가파른 계단이 보여 뭐가 나올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계단을 올라간 뒤에 뒤로 돌아가니, 비밀의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조각들이 놓여있었고, 중간쯤에는 정자도 하나 지어져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뜰사랑이라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마치 갤러리에 온 듯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화와 함께하는 정원의 봄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작가의 작품이 정원을 따라 전시돼 있었다. 작가는 현재 성북구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고 한다. 작품과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정원앞에 놓인 파라솔테이블과 의자가 한폭의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언덕을 따라 더 올라가니 돌멩이들의 수다라는 정원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가죽공예체험행사가 열리고 있었으며, 커피도 판매하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여유롭게 누워있었고, 정원 안쪽으로는 미니연못과 돌멩이를 따라 흐르는 물, 그리고 예쁘게 가꾼 화분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번엔 골목을 다시 돌아 언덕을 내려오다 보니 쌈지정원을 만났다. 쌈지주머니처럼 아담한 정원, 개성넘치는 화분마다 사랑스레 피어난꽃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정원이라고 한다.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조화로워보였다. 공간에 퍼지는 라디오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추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정감가게 느껴졌다.

조금 더 내려가자 한평정원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담장 안에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만 참여하는 축제인줄 알았는데, 빌라에는 정원이 없을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담장 밖에 꽃을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한 평쯤 돼 보이는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꽃을 심고 인형도 가져다 놓으니 뜻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길을 따라 쭉 더 내려오니 너나들이 뜰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정원이었지만 예쁜 꽃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집이고, 정원인 사적공간이 이틀동안, 사람들을 활짝 맞이하고 있었다. 한바퀴를 돌아 다시 큰길로 내려오니 ‘정릉마실’과 ‘빙그레다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 행사의 본부같은 느낌이다. 항상 조용했던 빙그레다방안이 차를 마시는 사람들로 채워져 북적였다. 벽에는 정원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의 이야기와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실측해서 그렸다는 집의 모양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방 안쪽으로도 전시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청년들이 정릉에서 살아가며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정릉마실에는 바자회가 열려 저렴한 가격에 옷과 물품들을 사려는 손님들이 관심을 보였다.

예쁜 정원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초입인 목화향기에는 어느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어르신의 붓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파른 계단을 이용해 만든 정원인 금낭화 뜨락까지. 집집마다 집의 크기와 모양도, 정원의 크기도 다 달랐지만, 집과 터전을 아끼는 마음으로 소중히 꾸민 공간은 모두다 아름다워보였다.

교수단지는 조선왕릉 정릉과 신덕왕후의 원찰인 흥천사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1970년대 서울대학교 주택조합에서 문화재처응로부터 불하받은 토지에 계획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현대주거문화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지금은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들 틈에 둘러싸인 정릉교수단지이지만, 오래 된 집을 주민이 정성스레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런 마을이 아직도 서울에 존재하고 있다는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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