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심우장, 법정스님의 길상사. 성북동에는 유서 깊고 오랜 역사가 깃든 문화재나 건축물이 다수 있다. 뿐만 아니다. 선잠박물관이나 가구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도 함께 위치해 있다. 이러한 성북동의 꼭대기에는 흔치 않게 옛 돌조각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박물관 역시 존재한다.
2015년 북악산과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곳에 문을 연 <우리옛돌박물관>. 옛돌조각에 담긴 선인들의 수복강녕과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우리의 소망도 기원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또한 석조유물과 근현대 한국회화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소통의 장으로써 선조들의 삶의 철학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옛돌박물관에서는 매일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어 관련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설명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 보면 더더욱 이해가 쉽다.
1층 환수박물관에는 장군석, 석수와 함께 능묘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문인석들이 가득하다. 천 년간 한결같이 능묘를 지켜온 문인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수가 일본으로 밀반출되다가 환수되어 돌아와 한 곳에 모여 한국 돌의 힘과 위엄을 보여준다. 문인석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은 홀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하가 왕을 알현할 때 조복에 맞춰 손에 쥐던 것이다. 수복강녕이 적혀 있는 홀을 들고 장군석을 한 바퀴 도는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2층은 동자관과 벅수관이 있다. 동자관에는 16~18 세기 중반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동자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쌍상투를 틀고 천의를 입은 채 지물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공손히 시립하여 엄숙한 묘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이다.
동자관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공간이 벅수관이다. 옛 사람들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의 얼굴을 한 벅수가 서 있으면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 한다고 믿었다. 또,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마을의 벅수에게 갖가지 크고 작은 소원들을 정성스레 빌기도 했다.
우리옛돌박물관을 찾은 우리들 역시 소원을 빌어 수 있다. 전시장 밖에 종이가 마련되어 있어 종이에 소원을 적어 동자석을 돌며 자신의 메신저가 되어 줄 동자를 찾아 소원을 말한다. 그 후 소원의 벽에 종이를 꽂아준다. 소원의 벽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소원이 가득가득 꽂혀 있었는데, 박물관에서는 1년에 한두 번씩 소원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종이를 태우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소원을 빌고 나오면 복도에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감실에 앉아 침묵의 돌과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안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시끄럽던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내 안의 소리를 듣게 하였다.
가장 위층인 3층은 기획전시관으로 김환기, 김창렬 등 근현대 한국작가들의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밖으로 나와 3층 옥상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는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그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옛돌박물관 건물의 특징은 1층부터 3층까지 건물 밖에도 통로가 나 있다는 것이다. 무병장수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통로는 양 옆으로 수많은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무병자수를 기원할 수 있다고 하니, 박물관에 찾아왔다면 한 번씩 걸어봐야 할 길이다.
박물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둘러보았다고 끝이 아니다. 야외는 돌의 정원이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거대한 미륵불, 동자놀이터, 승승장구의 길 등 갖가지 돌조각들로 꾸며진 야외 전시관으로 실내전시관만큼이나 볼거리가 많다. 깊어지는 가을에 단풍 든 정원을 걷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눈 오는 겨울에도 고즈넉한 운치가 있을 듯하니 한 번쯤 방문해보면 성북동의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