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중 매일 찾는 오동근린공원 숲속도서관은 걷기 운동을 하다가 들러서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어느 날 오동 숲속도서관 앞에 걸린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도서관에서 어르신 이야기를 기다린다니?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도서관 안내 데스크에 문의를 하였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조주혜 젊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이라는 애매모호한 설명에 몸으로 하는 운동을 한 수 배우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신청하였다.
8월 6일 한여름, 첫 만남 시간에는 몸풀기 요가를 배웠다. 그날 “나의 인생에 대한 행로를 선으로 그려 오라”라는 숙제를 받고 집에서 곰곰이 기억을 되살려 10대에서 10년 단위로 지금의 나이, 칠십까지 살아온 인생길을 선으로 그려 보았다. 작가의 의도는 지나온 선, 나아갈 선이라는 영상과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8월 13일 두 번째 시간에는 도서관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보라는 제안을 받고 <고령화 가족>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내게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산전수전 공중전’이라고 답하였다. 70년을 살아 보니 평탄한 길, 파란만장한 길, 참 다양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보니 이제는 사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말하였지만 정말 그럴까?라는 물음엔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의 날에는 작가는 파란 잔디가 깔려있는 광장에 자리를 잡고 인생을 선으로 표현해 보라고 제안하였다. 춤에 기본기인 발을 딛는 방법과 걸음걸이 손동작을 신기해하며 여중•여고 무용 시간에 배운 춤동작을 기억해 냈다. 발꿈치를 살포시 놓으면서 종종거리기도 해보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빙빙 돌아도 보고 걸어가 보니 그것이 내가 살아온 삶이 춤이 되었다. 삶의 이야기가 자서전이 되는 것은 흔히 주위에서 접해봤지만 춤으로 인생이 표현되다니 신기했다. 처음으로 접한 이상야릇한 체험은 확신으로 내게 와닿아 있었다.
또 네 번째 만남에는 사진작가와도 함께 했다. 주름진 무릎을 중심으로 움직여 보고 춤을 추면서 공원을 걸었다. 다섯 번째 만남은 주말, 아무도 없는 팔각정에서 살풀이도 배웠다. 걸음걸이 동작, 손가락 모양 손과 팔의 동작 등 손에 든 하얀 천을 어떻게 손에 잡고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한 동작 한 동작을 배웠다.
삶의 길을 춤으로 풀어 보니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1950년대에 태어나 부족함도 알았으며 70년대 대학 시절 낭만도 즐겼고, 결혼 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 80년도 민주화 격변기도, 90년도 신자유주의 시대도, 2000년도 밀레니엄 시대도 나름 열심히 지나온 것처럼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IT 정보화시대에도 매일 노력하면서 따라가고 싶다.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나와 함께 한 조주혜 무용 작가가 궁금해지고 이번 프로그램인 이야기청도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성북문화재단과 협력하고 있는 이야기청은 젊은 작가들이 지역 노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이 듦에 대해 예술로 말하는 활동을 성북에서 7년째 하고 있었다.
올해 내가 참여한 이야기청은 봄에 시작하여 단풍에 매우 아름다운 가을에 <주름의 숲>이라는 타이틀로 공유회도 진행하였다. 나와 함께 한 조주혜 작가를 비롯하여 남정근, 모유진 3명의 젊은 작가들이 오동숲속 도서관에서 여러 노인들의 만나 춤으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그동안 나눈 이야기들을 펼쳐 내었다.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예쁜 도서관에서 나와 함께 활동한 노인들, 우리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하루 종일 나오고,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예술작품이 되어 평소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도서관 구석구석에도 놓여있다니…
‘주름은 오랜 삶의 경험과 기억, 감각과 지혜가 우리 몸에 각인된 흔적이다. 주름은 상처와 다르다. 주름은 나와 외부의 수많은 사건과 시간 속에서 형성된 축적된 결과물이다. 주름은 삶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경계이며, 삶과 또 다른 삶의 관계다. 삶의 희로애락으로 가득 찬 노인들의 이야기들이 바로 주름의 숲이다. 주름의 숲에는 수많은 다양한 경험과 기억, 감각과 지혜가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연결된다. 숲과 도서관, 노인과 아이, 어제와 내일, 기억과 상상이 주름을 통해 관계하며 춤을 추고 글과 그림이 되고, 또 다른 주름이 되어 쌓인다‘ 이번 공유회의 의미를 담은 글귀가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다. 이번 활동을 마치고 내가 느낀 감정은 ‘성북은 문화의 고장이고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문화가 내 일상과 가까이 있는 지역에 살고 있어서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조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