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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사

미아리고개 위에서 발견하는 돈암동 그리고 길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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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북마을
2019년 11월 29일

 

정릉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진 후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에서 개운산 방향으로 몸을 트니, 자연히 미아리고개 쪽으로 몸이 향했다.

미아리고개. 미아리고개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도 하다.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란 노래 덕분이다.

“울고 넘던 그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노래 속 미아리고개는 왜 한 많아 울고 넘는 고개여야만 했던 걸까.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미아리고개가 위치한 돈암동-길음동 경계면은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외곽도로였다고 한다. 때문에 미아리고개만 차로 넘어 가면 종로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원남동 쪽으로 질러갈 수 있다면 광화문에 잇닿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편리’가 전쟁과 같은 위급 상황에서 ‘위험‘이 되리라고 그 누가 쉬이 짐작했을까. 미아리고개-수유리-도봉산을 거쳐 경기도로 나가 의정부-동두천-연천까지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길은 고스란히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그렇기에 미아리고개는 1950년 당시의 비극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는 박완서 작가의 저서에도 몇 차례 언급되는 부분이다. 미아리고개와 지금의 성신여고 인근 돌산 밑 공터는 말그대로 처형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미아리고개에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와 함께 위령비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아픈 역사 이야기 외에도 미아리고개 위에 올라서 길음동과 돈암동을 내려다보면 느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는 것. 대한민국이 휴전 이후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서 이뤄냈던 그 모든 것들이 군데군데 남아있는데, 그것들을 키워드 형태로 모아보도록 하겠다.

#아파트

이 키워드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성북구에 들어선 최초의 아파트는 종암동에 있었던 “종암아파트”로 알려져 있다는 것. 하지만, 성북구 최초로 “대단지형 아파트”가 생겨나고 밀집된 곳은 돈암동과 길음동이 아닐까. 어느 정도냐면, 종암동이 성북구 내 인구 1위지만 (약 44000명 정도) 정작 인구 밀도는 29000명/㎢이 살짝 넘는 정도이다. 그런데 돈암동은 인구가 약 1동과 2동을 합쳐야 42000명 정도가 나오지만, 각 동의 인구 밀도는 돈암1동 34000명/㎢ – 돈암2동 46000명/㎢ 이며, 이 밀도의 원천은 모두 다 돈암동 소재의 대단지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길음동으로 가면 더 엄청나다. 길음 1동만 한정 지어도 인구는 38000명 정도이지만, 인구 밀도는 무려 51000명/㎢!! 이유는 간단하다. 길음 1동 지역은 “길음뉴타운” 이 한 단어로도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소위 “재개발” 그리고 “뉴타운”의 시기를 거쳐 오면서 이렇게 압도적인 인구 유입을 겪은 곳은 성북구에서 돈암동과 길음동 둘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원천에는 역시 아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이 아파트를 끌어낸 키워드는 다음 키워드다.

#지하철 – 길음역

예전에 대학교 사회학 수업 때 나왔던 논쟁거리가 하나 있었다. “지하철역이 먼저일까, 아파트가 먼저일까?” 물론 지역이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답을 길음역에서 내려 보고자 한다.

길음역은 1985년 상계-한성대입구역까지의 4호선 1차 구간이 생길 때 같이 생긴 역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4호선이 “성북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하철 노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이후 돈암현대아파트가 생겼고 삼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성북구에 드디어 “역세권”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내부순환로

하지만, 성북구에서만 29년을 사는 필자의 관점에서 돈암동과 길음동에 생긴 가장 혁신적인 것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해 본다면 내부순환로를 빼 놓을 수 없다. 내부순환로가 전구간 개통되던 1999년을 기점으로 내가 보던 길음역의 풍경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차 몇몇대만 간신히 들어오던 길음역 앞 도로에 수많은 차가 지나가고, 그나마 대로였던 미아리고개를 넘는 차량의 수가 더 늘어난 것이 그때 이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긴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길음동과 미아리고개는 “출근길-퇴근길 지옥”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버스를 타고 길음역 인근을 지나게 되면 되도록 아침 8시~9시 사이, 그리고 저녁 6시~7시 사이는 피해서 버스를 타고는 한다. 왜냐면 보통 그 때에 버스가 상당히 많이 서행하고, 버스 안에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제대로 서 있기마저 힘들기 때문이다.

#버스 중앙차로

아무래도 이 키워드는 가장 최근의 이야기일 것이다. 미아리고개는 이 버스 중앙차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버스가 그냥 “지나가는 곳” 이었다. 그 말은 이쪽 근처에서 버스를 타려면 길음시장까지 가서 가로변 정류장에서 타거나, 미아리고개를 내려와서 지금의 미인도가 있는 곳 인근에 있었던 가로변 정류장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차로가 2004년에 들어선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굳이 더 걸어갈 필요 없이 미아리고개 중앙에 선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 간편한 상황이 된 것이다.

가끔 밤에 늦게 귀가하게 되어 심야버스를 타거나 혹은 아침 일찍 나가 그쪽으로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미아리고개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은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참 많이 타고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 사람들 한명 한명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연들이 여전히 미아리고개 위를 지난다.

지난 시절 ‘울고 넘던’ 미아리고개가 ‘웃으며 넘는’ 미아리고개가 되길 바란다.

[글/사진 성북마을기자단 송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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